27호 PL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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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반환점을 돌면 어쩐지 방전된 기분이 든다. 남은 연차를 세어 보고, 에어컨 앞에서 폰만 넘기다 휴가가 끝나는 여름. 그런데 지구 어딘가에서는 같은 8월에, 사람들이 토마토를 뒤집어쓰고 진흙에 몸을 던지며 논다. 멀리서 보면 유난스럽기 짝이 없는 이 장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구경거리’가 아니라 ‘직접 하는 일’이라는 것. 사실 이 놀이들은 어제오늘 참여형이 된 게 아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반세기 넘게 사람들은 늘 이 안에서 던지고 뒹굴어 왔다. 다만 가만히 앉아 스크롤만 하던 우리가, 2026년 지금 유독 이 장면에 눈이 오래 머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감각을 비트는 극장, 에든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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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oblesse.com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는 1947년, 정식 초청을 받지 못한 극단들이 축제의 주변부에서 스스로 무대를 올린 데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축제는 작품을 미리 심사하지 않는 완전한 개방성을 지킨다. 2026년 8월에도 3,500편이 넘는 공연이 도시의 골목과 지하와 뒷마당을 채운다. 애초에 관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굴러온 축제라는 뜻이다. 넷플릭스 화제작 ‘베이비 레인디어’가 이곳의 작은 1인극에서 출발했듯, 무명의 무대가 언제 다음 스타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관객을 단순한 구경꾼 이상으로 만든다. 그 정점에 다크필드(DARKFIELD)의 컨테이너 공연이 있다. 올해 조지 스퀘어에 놓이는 ‘FLIGHT’는 에어버스 이코노미석과 똑같이 꾸민 좁은 컨테이너 내부에서 진행된다. 문이 닫히면 완벽한 암흑이 찾아오고, 360도로 감싸는 바이노럴 사운드와 바닥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만이 남는다. 눈이 감기자 오히려 귀와 살갗이 곤두선다. 무엇을 보여줄지가 아니라, 어떻게 감각을 빼앗았다가 되돌려줄지로 승부하는 무대다.


만지고 던지는 촉감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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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BS

스페인 부뇰의 라 토마티나는 매년 8월 마지막 수요일에 열린다. 2026년에는 8월 26일, 정오를 알리는 대포 소리와 함께 6대의 트럭이 쏟아낸 토마토가 거리를 붉게 물들인다. 1945년 마을 퍼레이드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몸싸움에서 시작된 이 놀이는, 한때 금지됐다가 주민들이 ‘토마토 장례식’까지 치르며 되살려낸 끈질긴 내력을 지녔다. 규칙은 단순하다. 시장 가치가 없는 물렁물렁한 토마토를 반드시 손으로 으깬 뒤 던질 것. 물러 터진 과육이 손가락 사이로 뭉개지는 감촉. 평소에는 불쾌했을 감촉이지만 축제 기간에는 유쾌한 기대감으로 변모한다.

한국의 보령머드축제도 결이 같다. 제29회 축제는 2026년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다. 서해 갯벌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미끄러지는 동안, 옷차림이 알려주던 나이도 직업도 진흙 아래로 사라진다. 밤이 되면 해변은 라이브 음악과 조명으로 또 한 번 분위기가 바뀐다. 스페인과 한국의 두 축제 모두 보는 순간이 아니라 만지고 뒤집어쓰는 순간에 완성된다. 손과 살갗이 기억하는 축제인 셈이다.


발밑의 감각, 부산바다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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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의 여름 바다를 대표하는 부산바다축제는 2026년, 서른 번째 해를 맞아 8월 7일부터 13일까지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열린다. 흥미로운 건 무대의 이동이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화려한 도심 해변을 떠나, 서부산의 너른 갯벌로 자리를 옮겼다. 마천루와 네온사인이 병풍처럼 둘러선 해변 대신,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는 드넓은 백사장과 갯벌을 택한 것이다. 그 덕분에 축제의 배경은 인공 조명이 아니라 자연이 채운다. 발밑에 밟히는 젖은 모래의 물컹한 감촉, 얼굴을 스치는 짭짤한 바닷바람,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다대포의 일몰이다.

이곳의 프로그램은 관객을 관중석에 앉히지 않는다. 백사장 위로는 대규모 해변 포장마차 '다대포차'가 늘어선다. 한낮의 '선셋비치클럽'에서는 서프보드와 패들보드에 올라 직접 파도를 밀어 보고, 해가 기울면 백사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라이브 음악에 몸을 맡긴다. 일몰을 마주하고 호흡을 고르는 비치 요가처럼, 잠든 몸의 감각을 깨우는 프로그램도 곳곳에 놓였다.

개막일인 8월 7일 밤의 '다대불꽃쇼'는 이 축제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고밀도 도심에서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는 불꽃놀이와 달리, 다대포의 불꽃은 일몰 직후 해안 가까운 수상에서 피어오른다. 좁은 하늘이 아니라 광활한 갯벌과 해변 전체를 스크린 삼아 번지기에, 관객은 불꽃을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스케일 한복판에 놓인다. 이 축제의 의도는 단순하다. 부산이라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 속으로 관객이 흠뻑 젖어 들게 하기 위해서다.


화면 밖에서 되찾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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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령 머드 축제

에든버러의 암흑, 부뇰의 붉은 거리, 보령의 갯벌, 그리고 다대포의 젖은 모래. 이 장면들은 어제오늘 참여형이 된 것이 아니다. 달라진 건 축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쪽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화면과 AI가 그려낸 매끈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지내는 사이, 우리는 손끝의 촉감과 발밑의 질감, 살갗에 닿는 바람 같은 감각을 조금씩 잊어 왔다. 편리해진 대신 밋밋해진 일상 속에서, 온몸으로 세계를 만지던 감각은 어느새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8월의 이 축제들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진다면, 그건 잊고 지낸 감각을 되찾을 시간이 됐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토마토를 손으로 으깨고, 진흙에 미끄러지고, 젖은 모래를 밟는 그 잠깐 동안, 우리는 화면 밖에서 다시 온몸으로 세계와 만난다. 올여름, 굳이 뜨거운 바깥으로 나가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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