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호 EAT #1

EAT

익숙하게 즐겨 온 사누키우동 한 그릇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쫄깃한 면발을 만드는 ‘코시’부터 맑고 깊은 맛을 더하는 ‘이리코’, 그리고 우동을 하나의 문화로 키워 온 가가와현의 시간까지. 우리가 마주하는 한 그릇이 어떻게 지금의 사누키우동이 되었는지, 그 맛의 비밀을 하나씩 따라가 본다.


사누키우동,
알고 보면 더 특별한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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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일본의 우동 맛집 중 한 곳을 소개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고베의 관광 명소인 기타노이진칸 거리에서 조용한 건물 속 사누키우동 맛집을 만날 수 있다. 우연한 기회가 아니라면 닿기 쉽지 않은 위치. 그러나 내부를 살펴보면 한국 유명 연예인의 사인이 여럿 걸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게였다. ‘사누키’는 본래 사누키우동이 유래한 가가와현의 옛 이름이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 전국은 물론 이제 우리나라 일본 음식점에서도 너무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그런데 과연, ‘진짜’ 사누키우동은 무엇일까?

오랜 숙성을 거친 면, 멸치로 우린 국물, 그 위에 얹은 튀김 하나. 그러나 이 단순함이야말로 오래 다듬어진 결과다. 최근 국내에도 마루가메 우동을 비롯해 일본식 사누키우동 전문점이 빠르게 늘며, 매장에서 면을 직접 뽑아 합리적인 가격에 갓 삶은 면을 내는 풍경이 익숙해졌다. 셀프 코너에서 튀김을 골라 담고, 뜨거운 국물을 부어 자리로 향하는 그 경험은 이제 특별한 미식 여행이 아니라 꽤나 친숙한 한 끼가 되었다. 그런데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면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 ‘코시(コシ)’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누키우동을 알고 먹으면, 같은 한 그릇도 사뭇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누키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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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apan.travel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누키우동의 종류는 대체로 몇 가지 기본형으로 나뉜다. 뜨거운 국물을 부은 ‘가케’, 진한 소스를 조금 얹어 비벼 먹는 ‘붓카케’, 삶은 면을 국물 없이 그대로 건져 내는 ‘가마아게’, 그리고 냄비의 면에 날달걀을 풀어 비비는 ‘가마타마’다. 여기에 새우·채소 등 원하는 튀김을 직접 고르고, 참마나 명란 같은 토핑을 취향껏 더한다. 주문부터 완성까지 손님이 직접 참여하는 이 방식은, 우동을 격식 없이 친근한 음식으로 만든다.

이 방식의 힘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매장에서 면을 그때그때 뽑아내는 ‘자가제면’, 그리고 그렇게 갓 뽑은 면을 부담 없는 가격에 낸다는 점이다. 갓 삶은 면의 탄력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조합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마케팅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 발명된 강점이 아니라, 사누키우동 본연의 특장점에서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


‘진짜’ 사누키우동의 조건: 코시와 이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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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ikoku-tourism

사누키우동의 정체성은 면의 식감, 이른바 ‘코시’에 있다. 코시는 밀 단백질이 물과 만나 형성하는 글루텐 구조에서 비롯된다. 글루텐 그물이 촘촘하고 탄탄할수록 면은 씹을 때 되치는 탄력을 갖는다. 전통적인 사누키우동이 반죽을 발로 밟아 치대는 것도 이 글루텐 구조를 촘촘히 다지기 위해서다. 나아가 사누키우동의 발현지인 일본 가가와현은 아예 우동 전용 밀 품종 ‘사누키노유메’를 자체 개발해 면에 쓴다. 우동의 식감에 최적화되도록 개량한 이 전용 밀이, 그 특유의 쫄깃함을 뒷받침한다.

국물의 비밀은 멸치다. 가가와현 이부키지마 앞바다에서 잡히는 최고급 멸치 ‘이부키 이리코’는 어획 후 30분 안에 섬의 가공장으로 옮겨져 곧바로 삶고 건조된다. 신선도가 곧 품질인 멸치를 잡자마자 처리해, 잡내 없이 맑은 감칠맛만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이리코와 홋카이도산 다시마가 만나 투명하면서도 깊은 흰 국물이 완성된다. 강수량이 적어 밀 재배와 제염, 멸치잡이에 두루 유리했던 이 지역의 기후를 떠올리면, 코시와 감칠맛은 우연이 아니라 땅과 재료가 함께 빚어낸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우동이 문화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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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agawakenudon

사누키우동은 한 그릇의 음식을 넘어 지역을 떠받치는 문화 자산이 되었다. 가가와현에는 우동 전문점이 700곳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역에서 난 밀과 멸치로 만들어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의 순환이 이 밀집을 지탱한다. 우동을 향한 자부심이 어찌나 큰지, 가가와현은 스스로를 ‘우동현’이라 부르며 지역 관광 브랜드로 삼을 정도다. 가가와에서는 아침 식사로 우동을 먹는 일이 자연스러울 만큼, 우동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스며 있다.

이 문화는 관광 경험으로까지 확장됐다. 대표적인 예가 ‘우동 택시’다. 우동의 역사와 지식을 묻는 필기, 손님에게 재미있게 안내하는 실기, 그리고 직접 면을 뽑는 손반죽 시험까지 통과한 기사만이 이 택시를 운행할 수 있다. 2003년 시작된 이 서비스는 한 시간 남짓의 코스로, 곳곳에 흩어진 우동 맛집을 순례하려는 여행자에게 살아 있는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한 그릇 뒤에 놓인 시간과 정성이, 이렇게 도시의 풍경이 되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사누키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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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hikoku-tourism

재료와 기후,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기술을 알고 나면 같은 한 그릇도 다르게 보인다. 젓가락 끝에서 되치는 탄력에는 전용 밀의 글루텐이, 맑은 국물에는 30분 만에 가공된 멸치의 신선함이, 700여 곳의 가게와 우동 택시에는 지역이 오래 쌓아 온 시간이 담겨 있다. 국내에서 마주하는 합리적인 한 그릇의 우동 역시, 결국 이 오랜 특장점 위에 서 있다. 진짜 사누키우동은 알고 먹을 때, 비로소 그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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