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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한 바게트에 파테와 채소를 채운 반미, 진한 커피에 달콤한 연유를 더한 카페 쓰어다. 지금은 가장 베트남다운 음식으로 익숙하지만, 그 시작을 따라가면 뜻밖에도 프랑스와 마주하게 된다. 언어와 건축, 식탁 곳곳에 남은 흔적이 베트남의 재료와 감각을 만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호치민의 거리에서 만나는 한 끼를 따라 두 나라가 함께 만들어 낸 맛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프랑스의 흔적이 남은 호치민의 거리

출처 : 베트남 가이드
동남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갓 구운 바게트에 파테를 바르고, 카페 쓰어다(베트남식 연유커피)를 곁들이는 풍경. 베트남, 특히 호치민에서는 이것이 이국의 사치가 아니라 일상의 한 장면이다. 호치민의 거리에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서 있고, 골목마다 커피 향과 쌀국수 냄새가 뒤섞인다. 한때 ‘동양의 파리’로 불린 이 도시에는 어떻게 프랑스의 맛과 풍경이 자리 잡았을까. 그 답은 약 한 세기에 걸친 고통스러운 식민 지배 시대와 그 사이 서로 주고받은 음식들에 있다.
로마자를 쓰는 나라: 프랑스와 베트남의 역사

출처 : Vinpearl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한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면서도 이 나라는 한자가 아니라 라틴 문자를 쓴다. 오늘날의 표기 체계인 ‘쯔꾸옥응으’는 16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포교를 위해 베트남어를 라틴 문자로 적던 관행에서 출발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출신 선교사들이 현지에 머물며 언어를 익힌 뒤, 1651년 로마에서 베트남어·포르투갈어·라틴어 사전을 펴내 이 표기법을 오늘의 틀로 집대성했다. 이후 프랑스 통치기에 널리 보급되며, 베트남은 한자·쯔놈 대신 라틴 문자를 쓰는 나라가 되었다.
도시의 풍경도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 19세기 후반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사이공 노트르담 대성당, 유럽풍의 중앙우체국,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가 차례로 들어서며 사이공은 ‘동양의 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약 80년에 걸친 프랑스 통치기에 형성된 이 콜로니얼 건축은, 언어와 더불어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리고 이 유럽적 배경은 자연스럽게 식탁으로도 스며들었다. 유럽식 카페와 제과점 문화가 도시에 뿌리내린 것도 이 무렵이다.
식탁 위의 교류: 바게트에서 반미로

프랑스가 들여온 바게트·파테·버터·카페 등 식문화는 베트남의 쌀과 향신료, 더운 기후와 만나 전혀 새로운 음식으로 다시 태어났다.대표적인 것이 ‘반미’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밀 수입이 줄자 제빵사들이 값싼 쌀가루를 섞어 빵을 개량했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가벼운 베트남식 바게트가 탄생했다. 여기에 파테와 절인 채소, 고수를 채워 넣으며 반미는 프랑스식 재료와 베트남식 감각이 한데 어우러진 서민의 한 끼가 되었다.
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쌀국수 ‘퍼’ 역시 이 시기의 산물로 이야기된다. 프랑스식 소고기 스튜 ‘포토푀(Pot-au-feu)’의 ‘feu’에서 이름의 기원을 찾는 설이 있으며, 기존의 쌀국수 문화가 프랑스식 고기 육수와 만나 지금의 퍼로 발전했다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진한 연유커피 또한 신선한 우유를 구하기 어려운 더운 기후 속에서 연유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굳어진 조합이다. 여기에 프랑스식 커스터드 푸딩은 ‘반 플랑’이라는 이름의 디저트로 남았다. 이렇듯 두 나라의 재료와 방식은 일방적인 이식이 아니라, 서로를 바꿔 가며 제3의 음식으로 완성됐다.
도시에 프렌치가 자리 잡기까지

출처 : therefinerysaigon
식민기에 형성된 프랑스식 외식 기반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조리법과 외식 문화가 남은 위에, 저렴한 인건비와 사철 풍부한 열대 식재료가 더해지면서 ‘파리보다 합리적인 프렌치’가 가능해졌다. 한편, 197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을 전후해 미국과 프랑스 등지로 이주한 베트남인들은 퍼와 반미를 현지에 소개했고, 이는 베트남 음식이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이 흐름의 정점에는 파인 다이닝이 있다. 호치민 유일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아난 사이공’의 셰프 피터 꾸옹 프랭클린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린 시절 베트남을 떠나 미국에서 자라 예일대를 졸업하고 투자은행가로 일하다 요리의 길로 방향을 틀었고, 2017년 고국으로 돌아와 이 식당을 열었다. 반쎄오를 타코처럼 재해석하는 등 길거리 음식을 프렌치·현대 조리법으로 옮긴 그의 ‘뉴 베트남 퀴진’은, 이 오랜 융합의 역사가 도달한 하나의 정점이다.
호치민의 한 끼에 남은 두 나라의 시간

출처 : vietnamnomad
바게트가 반미가 되고, 포토푀가 퍼라는 이름으로 남고, 커피에 연유가 더해지기까지. 호치민의 식탁은 한 세기의 만남이 만들어 낸 융합의 기록이다. 로마자로 적힌 간판과 성당의 실루엣 사이에서, 프랑스와 베트남은 서로의 재료와 방식을 주고받으며 제3의 맛을 빚어냈다. 이렇듯 호치민에서 반미 한 조각을 베어 물 때, 우리는 두 나라가 함께 쓴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한 한 편의 식문화사를 맛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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