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LIFE #2

LIFE

내 집이 아니라고 해서 취향까지 잠시 미뤄둘 필요는 없다. 몇 년 뒤 떠날 전월세집이라도 벽을 꾸미고, 공간을 나누고, 나에게 맞는 집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만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 뚫지 않고, 붙였다 떼고, 떠날 때 다시 가져가는 ‘무타공’ 인테리어. 짧게 머물더라도 내 집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새로운 공간의 문법을 들여다본다.


잠시 살 집에도 취향은 필요하다

28호 LIFE #2 IMG 1

출처 : 유튜브 자취남 채널

유튜브 ‘자취남’은 일반인의 자취방을 찾아가 소개하는 채널이다.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댓글창에는 비슷한 말이 달린다. 어차피 남의 집인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타당한 질문이다.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 가구는 한 집에 평균 11.5년을 사는 반면, 임차 가구는 3.6년을 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꾸민다. 심지어 그 열의가 새로운 시공 방식을 하나 만들어냈다. 채널 운영자는 이 간극을 이렇게 읽었다.

“집을 돈으로 보느냐, 나의 '홈'으로 보느냐의 문제 같다.” _정성권, 유튜브 '자취남'


하루를 살아도 나를 위한 공간에서

28호 LIFE #2 IMG 2

출처 : 유튜브 오늘의 집 채널

인테리어 채널 ‘드리고’는 채널 소개에 한 문장을 적어 두었다. 하루를 살아도 나를 위한 공간에서. 원룸 인테리어와 셀프 인테리어, 룸투어가 주력인 채널이다. 짧은 거주와 적극적인 꾸미기가 모순이 아니라는 선언이 이미 슬로건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자취남'에는 내 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촬영 신청이 달마다 들어온다. 보여주고 싶을 만큼 공들였다는 뜻이다. 채널 운영자가 덧붙인 관찰 하나가 이 변화의 배경을 짚는다.

“20년 전에는 30대가 넘어가면 노총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혼자 살아도 그걸 하나의 가구로 인정해 주는 느낌” _정성권, 유튜브 '자취남'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은 11년 연속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기록했고, 그중 인테리어 시공 거래는 한 해 만에 3.5배 이상 늘었다. 오늘의집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역시 수 년 전부터 꾸준히 성행 중이다. 공간 디자이너가 일반인의 집을 인테리어 해주는 ‘비포애프터 시리즈’나 자신만의 감각으로 인테리어한 집을 소개하는 ‘전국내집자랑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들 콘텐츠의 주요 출연자와 시청층은 젊은 1~2인 가구가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1인가구는 2025년 기준 824만 가구, 전체의 36.6%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됐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3년 뒤 떠날 집의 벽에 구멍을 낼 수는 없었다.


전월세집도 무타공으로 꾸민다

28호 LIFE #2 IMG 3

출처 : 오늘의집

오늘의집이 2025년 한 해 검색어 상위 1,000개를 분석한 결과, ‘무타공’이 검색량 상위 1%에 올랐다.

그리고 키워드 목록은 곧 임차인의 욕망을 담아낸다. 무타공 중문, 무타공 슬라이딩 중문, 무타공 벽거울, 무타공 벽시계. 눈여겨볼 것은 무타공과 중문이다. 현관과 거실을 나누는 구조물로, 원래 벽을 뚫지 않고는 달 수 없던 품목이다. 액자 걸이에서 시작한 무타공이 구조 설비까지 올라온 것이다. 함께 늘어난 검색어도 결이 같다. 타공 없이 상부장에 거는 식기건조대, 쌓는 방식이라 구조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적층형 수납장.

28호 LIFE #2 IMG 4

출처 : @piekepaint

목록에 없던 품목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벽지 위에 칠했다가 벗겨낼 수 있는 리무버블 페인트가 대표적이다. 세입자가 가장 손대기 어려운 두 면이 벽지와 현관문인데, 이 페인트는 그 두 면을 건드리고도 원래대로 되돌린다. 이사할 때 필름처럼 벗겨내면 그만이다. 떼어낼 수 있는 점착 필름, 탈부착형 조명과 행거도 같은 계보에 놓인다. 공통점은 하나다. 설치의 반대말이 철거가 아니라 회수라는 것.

오늘의집은 이 흐름의 배경으로 전월세 거주자 증가와 건물 손상 방지 욕구를 들었다. 한 일간지는 같은 데이터를 두고 집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 읽으며, 전세와 월세 거주자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바뀐 것은 규칙이 아니다

28호 LIFE #2 IMG 5

출처 : @lenainteriorista

무타공은 새로 생긴 트렌드가 아니다. 새로 생긴 것은 키워드다. 임차인이 나갈 때 집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는 규정은 수십 년째 민법에 그대로 있었다. 판례도 사는 동안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모까지 물어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 부모 세대도 같은 조항 아래 세를 살았다. 벽에 못을 박고, 나갈 때 구멍을 메웠을 뿐이다.

그러니 무타공의 부상에서 읽어야 할 것은 제도가 아니라 욕구의 크기다. 세입자의 인테리어 욕구가 훨씬 능동적이고 구체적으로 변했다. 예전의 세입자 인테리어는 대체로 가리는 일이었다. 가구 몇 개를 들이고, 벽지에 남은 자국은 패브릭으로 덮었다. 손대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래서 집은 끝까지 남의 집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매일 요리하는 부엌의 타일을 새로 붙이고, 며칠을 들여 리무버블 페인트로 벽을 칠한다. 이사할 때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점은 예전과 같지만, 손을 대는 범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가리던 사람들이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계약서상으로는 임차인이다. 다만 사는 동안만큼은 내 집답게 살겠다는 마음이 그 앞에 있다. 무타공은 그 마음이 찾아낸 시공법인 셈이다.


흔적 없이 남기는 나의 취향

28호 LIFE #2 IMG 6

못자국은 오래 머물 사람의 흔적이었다. 한 집에 십 년을 사는 사람에게 벽의 구멍은 손실이 아니라 기록이다. 다만, 임차인에게 못을 박는다거나 바닥 타일을 마음대로 까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 집’이라는 기록도 하지 못했다.

짧게 머무는 사람은 다른 기록법을 택했다. 벽을 원래대로 두고 자기 취향만 남기는 방식이다. 떠날 때 취향은 함께 떠나고 벽은 그대로 남는다. 벗겨지는 현관 페인트, 뚫지 않고 세우는 중문, 그리고 평균 3년 6개월이라는 시간.

어쩌면 무타공 키워드는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지키려는 노력과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망의 교차점에서 부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무타공족들은 ‘하루를 살아도 나를 위한 공간에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롯데 맛진 로고
서울특별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217 롯데GRS 79 SQUARECOPYRIGHT ©2022 LOTTE GR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