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였다. 당시 한국은 엄격하고 규율이 강했던 유신 정권.
이 때문인지 미국에서 넘어온 반사회적 문화의 상징,
‘히피족’의 스타일이 전국을 장악했다.
장발에 통기타와 생맥주, 그리고 청바지로 대표되던
히피들의 패션이 자유를 상징했던 셈이다.
당시에는 성별을
불문하고 굵은 웨이브를
넣은 장발이 유행했다.
히피 스타일뿐 아니라, 화려한 색의 나팔바지와 와이셔츠로 대표되는
‘디스코 스타일’도 같이 떠올랐다.
억압받던 청춘들에게 당시 패션은 단순 옷, 그 이상이었다.
기성세대에 대항하는, 일종의 욕망 분출 수단과도 같았다.
리바이스와 게스, 그리고 뱅뱅은 현재까지도
데님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이다.
이들은 40년 전, 한국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바로 1980년대는 ‘대 청청시대’였기 때문.
‘응답하라 1988’을 봤다면, 극 중 덕선이와
친구들의 옷차림을 떠올리면 된다.
1983년 교복이 자율화되면서,
10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패션이 발전한다.
당시 이들 사이에서는 청바지는 물론 그 위에 청재킷까지
걸쳐줘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웨어 또한 크게 유행하게 된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였고,
각종 스포츠 브랜드의 가방과 운동화 붐이 일어나면서
교내의 새로운 교복문화를 형성하였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비니와 벙거지 모자를 즐겨 썼고,
본인 몸 세 개는 들어갈 법한 오버핏 상의를 자주 입었다.
거기에 길이와 밑위가 매우 긴 배기 팬츠,
a.k.a 똥지린 바지를 코디함으로써 ‘힙합 패션’을 선도했다.
뉴욕 할렘가에서나 볼 법하게도 이들은 의상의 태그를
제거하지 않은 채 무대에 오르곤 했다.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간지에 취해 따라만 입던 사람들 중에선
힙합 패션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에 반해 정착하는 경우도 많았다.
덕분에 힙합 스타일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면서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스타일 중 하나로 손 꼽힌다.
서기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연도를 인식하지 못해서
엉뚱하게 작동하는 문제, “Y2K”. 이 시대는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하여 ‘패션의 암흑기’라고도 불린다.
셔츠에 반소매 니트를 겹쳐 입는,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레이어드는 기본이고, 진주나 스팽글이 잔뜩 박힌 딱 달라붙는 티셔츠
그리고 트루릴리전, 세븐진과 같은 미쿡언냐 스타일의
부츠컷 데님 팬츠까지.
전국민이 잠시 미쳤었나 보다.
반짝거리고
튀는 거라면 뭐든지
겹쳐 입어야 하는
저주에 걸렸던 것 같다.
이 시즌 노스페이스에 미쳐봤던 사람? 나야 나.
교복 위에 등산복 안 걸친 친구가 없었던 그 시절.
요즘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일상과 스포츠의 경계를 허무는
‘에슬레져 복’ 어쩌면 교복과 아웃도어 의류를
함께 입던 그 시절부터 시작된 걸지도?
앞서 패션의 암흑기라 칭했던 2000년대의 Y2K 패션이 요즘 다시 핫하다.
당시 2000년은 새로운 세기로 넘어가는 역사적 순간이었고,
문화 전반에서도 미래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의 영향으로 다소 충격적인 패션이 유행하게 되었다고 본다.
개성 표출을
중요시하는 우리 MZ세대에게
그 시절 문화는
더 이상 흑역사가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조인성과 공유도
흑역사를 생성하던
그 시절에
생존자가 있었으니,
바로 ‘갓효리’.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로우 라이즈 치마와 카고팬츠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이웨이스트가 극으로 치닫자 더 이상 갈 곳이 없던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허리선이 바로 로우 라이즈다.
가뜩이나 짧은 다리, 최대한 끌어올려도 모자를 판에
로우 라이즈라니 당황만 하고 있다면, 일단 입어볼 것.
대신 상의의 핏에 유의해야한다.
올해 트렌드는 잘록한 허리를 드러내는 것이 포인트라지만,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로우 라이즈에 짧고 달라붙는 크롭 티를 매칭하는 것은
할리우드 얘기고, 우린 우리다..
우리는 대신에 배꼽까지 오는 친절한 크롭 티를 택한다.
로우 라이즈로 선택한 하의가 핏하다면, 상의는 루즈해도 좋다.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히 박혀 있는 복서 브리프를 코디해,
노출을 줄이거나 벨리 체인을 착용해 시선을 분산 시키는 것도 하나의 팁.
화려한 컬러에 커다란 프레임이 돋보이는
선글라스와 같이 과장된 디자인의 액세서리도 유행하고 있으니.
단순히 남들 눈에 예쁘고 멋있어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 건 아니라는 MZ세대.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 개성이야 말로
더욱 인정받는 시대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볼 지에 대한 두려움부터 앞선다면,
이번 Y2K 패션을 통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아보자.
생각보다 남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